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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재

역사와 전통 그리고 사람 냄새 넘치는 곳

길남 씨의 전통시장 탐방기 - 동래시장·수안인정시장

내용

‘동래시장’은 조선시대 동래읍성 5일장에서 유래한 시장으로 지금도 동래부동헌을 비롯한 다양한 유적들이 감싸고 있다.  

▲‘동래시장’은 조선시대 동래읍성 5일장에서 유래한 시장으로 지금도 동래부동헌을 비롯한 다양한 유적들이 감싸고 있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소설가 길남 씨와 그 가족은 무료함에 지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 박혀 있자니 온몸이 근질거리는지 딸내미 참참 양이 외쳤다. 

 

“엄마 아빠 밖에 나가요. 밖에 나가고 싶어!”

 

이거 참…, 글로는 표현이 안 되지만 그 목소리는 애착인형 초초의 성대모사다. 초고음의 그 성대모사로 목소리를 높이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고는 못 배긴다.

 

“안 되겠다. 여보, 어디든 나가자.”

 

길남 씨는 아직은 뜨거운 가을 태양과 아내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때 동래시장 한 번 가보자메? 이런 날엔 버스가 최고다. 버스 투어로 안 갈래?”

 

생각만 해도 시원한 버스 에어컨! 길남 씨는 단박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족과 함께 집을 탈출해 나왔다. 

 

“51번 타면 동래시장까지 한방 아이가!”

 

 

조선시대 역사 모두 품은 ‘동래부동헌’ 

 

남구 대연동에서 동래구 동래시장까지 가는 여정은 광안동, 수영, 망미동, 연산동을 지나 제법 감칠맛이 나는 코스였다. 버스 투어를 마친 가족은 수안동의 동래경찰서에서 하차한다. 

 

“여기가 수안동인데, 수 자가 한자로 목숨 수(壽)를 쓰거든? 근데 원래는 동래부동헌이 있어서 머리 수(首)를 썼다고 하는데. 어? 내 말하고 있다 아이가?”

 

길남 씨가 탐방기념 설명을 하려는데 아내 분은 참참 양의 퀵보드와 함께 바람같이 앞서 나간다. 이런 성질 급한 마누라…. 하고 중얼거리던 길남 씨는 별로 승산이 없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시장 앞의 동래부동헌에서만큼은 꼭 ‘설명충’이 되고 말리라 결심한다. 

 

동래시장 입구에 이르니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인 만큼 여느 시장과 다르게 고풍스런 분위기가 흐른다. 시장 입구로 들어서기 전 오른쪽에 위치한 동래부동헌은 부산의 역사를 모두 품고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동래부동헌 외대문(동래독진대아문·東萊獨鎭大衙門)이 나타난다. 이 문은 원래 동래부동헌 앞에 있던 것이나 일제강점기에 금강공원 숲 속으로 이전됐다가, 2014년 동래구 수안동 동래부동헌 복원에 따라 지금의 자리로 이전·복원했다.

 

이 문에 적힌 문구들은 조선시대 후기 부산이 어떤 역할을 했던 곳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려준다. 대문 중앙의 ‘동래독진대아문’ 현판은 동래부가 경상좌도 경주진영에서 독립해 독진(獨鎭)이 됐음을 공포하고 있고, 오른쪽 현판을 보면 동래부가 변경 지역을 다스리는 진변(鎭邊)의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의 영(營)이란 뜻의 ‘진변병마절제영’(鎭邊兵馬節制營)이란 설명이 있다. 

 

 

 

동래시장 1층은 식당가가 있으며, 건어물·야채 등을 판매한다(사진은 동래시장 식당가 모습).

▲동래시장 1층은 식당가가 있으며, 건어물·야채 등을 판매한다(사진은 동래시장 식당가 모습).

 

 

송공단·장관청·동래향교 … 역사 공간에 둘러싸인 시장 

 

그렇다면 동래부가 조선군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병마절제영, 그리고 독진으로 승격한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은 왼쪽 기둥에서 찾을 수 있다. 기둥에는 왜(倭)와 외교할 때 사신(倭使)을 접대하는 관아라는 뜻의 ‘교린연향선위사’(交隣宴餉宣慰司)란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곧 두모포에 있던 구 왜관과 새로 들어섰던 초량왜관을 염두에 둔 것이다. 조선과 일본의 300년 외교는 바로 이곳 왜관에서 시작됐고, 양국의 모든 외교와 무역은 이곳을 거쳐 이루어졌다. 그만큼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곳이 부산이었던 것이다. 동래부동헌은 왜관을 통해 들어온 왜 사신을 맞고 관리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동래독진대아문과 동래부동헌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동래시장 주위에는 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지키다 순절한 송상현 공을 비롯한 위인들의 충절을 기리는 송공단과 장관청 같은 조선시대 건축물에서부터 동래향교, 복천박물관 등 부산 역사를 간직한 공간들이 가득하다. 

 

이런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고 싶은 길남 씨지만 그의 의도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 참참 양이 동헌 앞에 마네킹으로 서있는 포졸 아저씨와 포토타임을 가질 때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그의 의무다. 소설가 길남 씨는 고고한 역사의 흐름을 꿀꺽 집어삼킨 채 동래시장으로 뛰어가는 모녀의 뒤를 따른다. 

 

동래시장 입구의 간판이 커다랗게 있고 전광판의 글자가 환영의 인사를 밝히고 있다. 동래시장은 조선시대 동래읍성 5일장에서 유래했다. 일제강점기 때 상설시장이 되면서 부산 제1호 공설시장으로 지정됐다. 이후 교통문제 등으로 인해 1937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이 때 동래시장 건물이 처음 지어졌다. 동래시장은 광복 후 1955년 부산공설시장으로 승격했는데 1968년 대형화재로 건물 전체가 불에 탔다. 2년간의 공사 끝에 지금의 동래시장 건물을 지었지만 1972년 다시 한 차례 불이 나면서 시장 2층을 태우고 말았다.

 

 

 

동래시장 2층은 의류·침구 등을 판매한다.

▲동래시장 2층은 의류·침구 등을 판매한다. 

 

 

1층 식당·건어물·야채 … 2층 의류·침구 등 판매 

 

길남 씨 가족이 1층 건물로 들어서니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식당가는 활기에 차 있다. 개방된 점포마다 놓인 간이의자에는 손님들로 꽉 차 있다. 분식 코너에는 칼국수, 김밥, 당면 등으로 출출함을 달래는 사람들이 앉아 있고, 식당에는 보리밥, 국밥 등등의 메뉴가 뷔페식 반찬과 함께 손님을 반긴다. 

 

길남 씨는 이런 뷔페식 반찬 형식을 멀리 경주시장에서 본 바 있으나 이곳은 메뉴의 다양성과 다른 가게와의 호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바다이야기’라는 수상한(?) 이름의 점포에 앉은 길남 씨 가족은 보리밥 2인분과 소주 한 병을 시킨다. 메뉴는 이외에도 동래파전, 녹두전, 빈대떡, 생태머리전 등 가지각색이다. 메뉴에 회초장이 있어 주변을 살펴보니 다른 횟집 점포에서 회를 떠와 먹는 손님들도 많다. 각 계절에 맞춰 회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귀띔이다. 그뿐 아니라 돼지 수육을 즐기는 분도 있어 주인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한 접시 5천 원, 1만 원인데 시키면 가져다준다 하신다. 

 

입맛 돋는 가을 동래시장에서 천국을 만났도다! 깻잎, 상추 등 그득한 쌈과 쌈장에 고추, 마늘, 김치를 싸서 입에 넣으니 감동이 밀려온다. 소주 한 잔 한 잔에 감동하며 한 병을 아껴먹는 꼴을 지켜보던 아내가 쯧쯧 혀를 차며 옆 가게에서 팥빙수를 시킨다. 추억의 팥빙수만큼 그득한 빙산 그릇이 배달돼 오자 아이스크림인 줄 착각한 참참 양이 다시 호들갑스러워진다. 

 

 

 

동래시장 아래 위치한 수안인정시장.

▲동래시장 아래 위치한 수안인정시장.

 

동래시장과 이어진 ‘수안인정시장’ 

 

“사실 동래시장은 부산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거든. 구포시장이 외부와 연결돼서 큰 시장이라면 부산 내에서 가장 큰 시장은 동래시장이었단 말이지. 옛날 동래 읍내장은 2일·7일, 구포장이 3일·8일이었으니 장돌뱅이들한테는 안성맞춤이었지. 그런데 중간에 만덕고개가 버티고 있단 말이야. 산적이 그리 많았다는데.”

 

“그때 빼빼영감인지 할아버지가 도적떼 다 쫓아냈다고 했던 그거제? 전에 다~ 들었던 거다.”

 

“어어, 그라이까 내는 그 이야기를 할라는 기 아이라, 초량에 큰 왜관이 생기고 나서 여기 동래시장이 바닷가 쪽에 세를 뺏기면서 시장 규모가 좀 작아졌다 이거지.”

 

말문이 막힌 길남 씨가 더듬거리며 말을 돌리는데 참참 양이 갑자기 한 마디 한다. 

 

“엄마, 아빠 말 왜 안 들어?”

 

“아이고, 우리 공주님이 말 참 잘하네.”

 

주인 아주머니가 칭찬도 해주시고, 길남 씨 어깨에 갑자기 힘이 들어간다. 아내의 눈총 따위 상관없는 길남 씨이다. 

 

배를 채웠으니 다시 시장 탐방에 나설 때다. 1층 선어회 코너는 거의 영업을 마감했고, 가족은 2층에 가본다. 동래시장의 2층 의류코너는 소박하면서도 멋이 흐르는 옷집들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다. 액세서리와 가죽신 등의 수제 제품들이 눈길을 끈다. 아내의 눈이 정신없이 움직이는데 참참 양까지 덩달아 흥분한다. 길남 씨는 지갑을 꼭 쥐고 있을 뿐이다. 

 

이제 시장 건물을 나와 골목을 돌아 나선 세 사람은 동래부동헌 담장을 따라 내려가 본다. 그런데 웬걸? 다시 커다란 시장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이름 하여 수안인정시장(壽安人情市場). 수안동과 인정이 함께 붙은 시장의 이름이 왠지 자연스럽다. 

 

옛 동래읍 장터, 동래시장에서 자연스레 연결돼 확장된 수안인정시장은 좁은 골목을 중심으로 상가점포가 연결돼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 동래시장은 건물 안에 비슷한 점포가 밀집되어 있는 반면 수안인정시장은 살짝 미로 같은 골목의 연속으로 특히 국밥, 분식, 족발, 통닭 등등 여러 종류의 맛집들이 점점 유명해져 타지에서 일부러 이곳을 찾아올 정도이다. 또 슈퍼, 옷집, 구제, 떡집, 해산물, 채소, 잡화 등등 갖가지 물품들을 파는 상가들이 조화롭게 포진하고 있어 상권이 잘 발달돼 있다. 

 

 

 

수안인정시장은 골목 골목 가게들이 이어지는 전통시장이다. 다양한 종류의 맛집들이 숨어있어 부산시민은 물론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수안인정시장에는 여러 종류의 맛집들이 숨어있다.

 

 

골목 골목 이어지는 시장 … 숨은 맛집 가득 

 

아닌 게 아니라 길남 씨 가족이 지나가는 시장골목은 일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행인들이 많으며 족발집이나 닭집 등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부산출신 웹툰작가 가스파드의 ‘선천적 얼간이들’에 언급됐던 어마 무시한 탕수육의 중국집 ‘○백관’도 이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시장을 걷는데 타지 사람인지 서울 사투리를 쓰는 여성 다섯 명이 한 분식집 앞에서 사정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저씨, 여기 짜장면 맛있대서 우리 먼 데서 왔어요.”

 

“저희까지만 팔아요. 예? 아저씨?”

 

그러나 문을 닫으러 나왔던 사장님은 난처한 얼굴이다. 

 

“아니, 그러니까 반죽이 다 돼갖고….”

 

“다 됐으면 팔면 되죠.”

 

“하하, 아이, 그기 아이라 다 떨어짔다고예.”

 

길남 씨는 걸음을 멈추고 대화에 귀를 기울이다 싱긋 웃고 만다. 어쨌건 이 시장에 숨은 맛집 고수들이 많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문득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드니 아내와 딸이 없다. 어디 있나 살펴보니 시장이 끝나는 골목 끝에 새장을 길게 늘어놓고 애완용 조류를 판매하는 노점에 두 사람이 있다. 간만에 보는 새 노점이다. 새장에서 나온 새 두 마리가 낮게 날아다니다 새장에 다시 앉는다. 앵무새를 보고 흥분한 참참 양이 겁을 냈다 다가섰다 한다. 아내가 어서 오라며 손짓을 한다. 

 

어느새 시장을 다 돌아봤나 보다. 벌써 어두워진 거리다. 역사와 전통이 사람들의 숨 쉬는 삶과 섞여있는 곳. 동래시장과 수안인정시장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지쳐 잠이 든 참참 양을 업은 길남 씨와 아내는 버스를 기다린다. 집으로 돌아가는 51번 버스가 어느새 다가오고 있다.

배길남 기사 입력 2018-09-28 부산이야기 10월호 통권 144호
자료출처 : 다이내믹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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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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