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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재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땅 인도네시아 화산을 가다

내용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부에 있는 유황 화산인 이젠 화산(Kawah Ijen)에 가기 위해 바뉴왕이(Banyuwangi) 인근에 여정을 풀었다.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조금씩 건물이 흔들렸다. 지진인가 싶어 밖으로 나가 보니 사람들은 별 동요가 없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핸드폰 메시지 알림이 계속 울린다. 숙소에서 200㎞ 떨어진 롬복(Lombok) 섬에 규모 6.9의 큰 지진이 발생했다는 알림이었다. 롬복 섬은 불과 한 달 전에 다녀온 곳이다. 소순다 열도의 아름다운 섬이 지진이라는 큰 시련을 만났다. 마음이 무거웠다. 

 

지구상에서 가장 격렬한 지각운동이 일어나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화산폭발과 지진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화산폭발과 같은 대자연의 힘은 인간에게 큰 시련을 주지만 동시에 인간에게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어 준다. 화산재는 비옥한 토지를 만들고, 급격한 자연의 변화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경이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화산재가 뒤덮인 땅에서 농작물을 가꾸고, 뜨거운 화산구에서 흘러나오는 유황을 캔다. 그리고 이 경이로운 자연을 만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을 맞이하며 대자연의 시련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간다. 자바섬은 인도네시아에서도 화산활동이 가장 활발한 섬이다. 여기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땅, 인도네시아의 화산과 그 안에서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만나 보자. 

 

신의 거처, 브로모 화산의 아침. 

▲신의 거처, 브로모 화산의 아침.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므라피 화산 아래 비옥한 토지가 펼쳐져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므라피 화산 아래 비옥한 토지가 펼쳐져 있다.

 

가장 위험한 화산, 므라피 화산 


자바 중부 족자카르타에서 북쪽으로 30㎞ 가면 므라피 화산이 있다. 므라피(Merapi)는 인도네시아어로 meru(산)와 api(불)의 합성어로 ‘불의 산’을 뜻한다. 이름 그대로 화산이다. 세계에서 가장 격렬하게 활동하는 화산 중 하나인 므라피 화산은 올해 5월에도 큰 분화가 발생해 화산 연기 기둥이 5천m 이상 치솟기도 했다. 2010년 11월에는 므라피 화산 폭발로 35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산간 마을과 농토는 화산재에 뒤덮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집과 땅을 잃었지만 마을을 버리지 못했다. 평생 농부로 살아온 그들은 이제 농기구 대신 여행자를 위해 지프차를 운전한다. 

 

지프차는 울퉁불퉁한 산길을 거쳐 ‘기억의 집’(The House of Memory)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폭발 당시 폐허가 된 마을 흔적을 볼 수 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소와 뜨거운 열기에 녹아내린 생활용품들 그리고 폭발의 시각을 알려주는 멈춰버린 시계. 지프차 운전사는 그 때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 준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고, 그의 말투는 담담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였으며, 화산재에 묻힌 곳은 평생 그가 살았던 마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화산에 오르기 위해, 화산 폭발의 흔적을 보기 위해 므라피 화산을 찾는다. 그러나 므라피 화산에서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농기구를 내려놓고 지프차를 운전하며 폭발의 아픔을 전하는 지프차 운전자의 삶이 아닐까? 선조의 찬란한 유적도, 아름다운 풍경도 아닌 자신이 당했던 시련과 아픔을 이야기하는 그 담담한 표정을 기억한다. 그 표정이야말로 대자연의 시련 속에서도 지난한 삶을 이어가는 이 곳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브로모 화산서 바라본 바똑산. 바똑산은 마치 주름치마를 두른 듯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브로모 화산서 바라본 바똑산. 바똑산은 마치 주름치마를 두른 듯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신의 거처, 브로모 화산 


이제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의 거처라 불리는 브로모 화산으로 향한다. 유명한 여행 가이드북인 ‘론리 플래닛’ 표지 사진은 대개 그 나라를 상징하는 곳을 나타낸다. 인도네시아판의 표지 사진은 브로모 화산이다. 브로모 화산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화산이다.

 

새벽 3시 브로모 화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 수많은 지프차가 화산재 먼지를 일으키며 어두운 길을 달려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브로모 화산이 보이는 건너편 언덕에 수많은 사람들이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여명이 밝아오자, 어둠 속에 있던 브로모 화산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주름치마를 두른 듯한 바똑산, 연기가 피어오르는 브로모산, 그리고 저 멀리 자바섬에서 가장 높은 스메루산까지. 경이로운 풍경이다.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한 장면을 선택하라면 바로 이 해 뜨는 브로모 화산 풍경이다.

 

일출을 보고 나면, 이제 브로모 화산을 오르기 위해 화산 근처 화산재 사막으로 향한다. 지프에서 내려 화산재 사막을 건넌다. 걸어가는 사람, 말을 타고 가는 사람,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 제각각이다. 브로모 화산 분화구에 오르기 위해서는 30분 정도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한다. 사람들 틈 사이에 섞여 가파른 계단을 오른 끝에 거대한 분화구에 도착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아래 분화구 바닥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 너머 하얀 유황 연기가 올라온다. 두렵다. 대자연의 위엄은 신앙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이 저 깊은 분화구 아래로 에델바이스 꽃다발을 던진다. 그리고 소원을 빈다.

 

다시 화산재 사막으로 내려가는 길, 뒤에서 한국말이 들린다. 오랜만에 듣는 모국어다. 부산에서 온 대학생이었다. 방학을 이용해 자원봉사를 왔다고 한다. 대견한 마음에 작은 격려라도 하고 싶어 음료수를 파는 노점으로 이끌었다. ‘마시고 싶은 것 고르세요.’ 그런데 고개를 돌리더니 큰 소리로 친구들을 부른다. 뒤돌아보니 꽤 많은 친구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물론 그 친구들에게도 음료수를 사 주었다. ‘비싼 돈을 주고 에델바이스 꽃도 사서 분화구에 던지는데 한국에서 이 멀리까지 와서 자원봉사하는 대견한 친구들에게 무엇이 아깝겠는가?’라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이젠 화산, 화산분화구에서 흘러나오는 유황의 모습.
 

▲이젠 화산, 화산분화구에서 흘러나오는 유황의 모습. 

 

거친 유황냄새 가득한 이젠 화산 


이제 화산을 돌아보는 마지막 여정, 자바 동부의 이젠(Ijen) 화산으로 떠난다. 이곳은 유황가스가 공기에 산화되어 나타나는 신비로운 빛, ‘블루 파이어’(Blue Fire)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가 보았던 화산 중에서 가장 접근이 어렵고, 거친 유황냄새가 온 산을 감싸는 가장 거친, 그래서 가장 치명적인 화산이다.

 

신비로운 블루 파이어를 보기 위해서는 새벽 2시에 산을 올라야 한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헤드 랜턴 불빛에 의지해 산을 오른다. 1시간 30분 정도 가파른 길을 오르면 갑자기 짙은 유황 냄새가 몰려온다. 사람들은 서둘러 방독 마스크를 쓴다. 사방은 어둠에 갇혀 있고, 길을 가늠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블루 파이어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사람들과 엉켜 유황 분화구가 있는 아래로 내려간다. 사람들에 막혀 내려 갈 수도 올라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화산 중턱에서 유황 가스에 고스란히 노출돼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간간히 내리는 비 때문에 블루 파이어는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산을 내려가고, 서서히 날이 밝아 온다. 여행자들이 떠난 그 곳, 이제 온전히 화산 그 자체의 모습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화산을 다니면서 보았던 것을 무색하게 하는 짙은 유황연기가 화산호수를 휘감는다. 바람이 잠시 잔잔해지면, 매캐한 냄새의 진원지인 짙은 노란색의 유황이 보인다. 지옥의 냄새를 내뿜는 저 유황색은 아름답다. 

 

화산 아래 드넓게 펼쳐진 논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화산 아래 드넓게 펼쳐진 논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짙은 유황연기 속에 유황을 캐는 노동자들 

 

유황 분화구를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내려가자, 유황 연기 사이로 사람이 보인다. 짙은 유황연기 안에서 긴 철봉을 들고 굳은 유황을 내려친다. 조각난 유황을 바구니에 담는다. 맨손이다. 유황을 캐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채취한 유황은 화장품, 의약품, 살충제 등의 원료로 쓰인다. 1㎏에 1천 루피아, 한 번에 75㎏을 채취하고, 하루에 두 번 유황을 캔다. 유황 노동자의 고된 하루는 15만 루피아로 보상받는다. 우리 돈으로 1만 2천 원이다. 고된 노동과 적은 보상은 그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동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타자의 시선일 뿐이다. 내가 만난 유황 노동자들은 당당했으며,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최소한의 안전장비를 갖추고, 좀 더 편안한 운반 장비를 가지기를 바라지만 그건 나의 동정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해결해 가야 할 일이다.

 

이젠의 밤은 블루 파이어를 보기 위해 모여든 여행자들의 공간이었고, 이젠의 낮은 이 거친 유황으로 삶을 이어가는 유황 노동자들의 일터였다. 나 또한 블루 파이어를 보고 싶어 했던 여행자 중에 한 명이었지만 이곳이 대자연의 위엄과 유황을 캐는 노동자들의 당당한 삶을 증언하는 곳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눈물, 콧물에 젖은 방독 마스크를 벗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저 멀리 높은 화산이 보이고, 그 아래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곱게 자란 벼들 사이, 논길을 따라 아이들이 뛰어 온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고맙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땅, 인도네시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이들이다. 나도 손을 흔들며, 인도네시아말로 크게 소리쳐 인사했다. ‘슬라맛 시앙!’(Selamat siang).

김도근 기사 입력 2018-08-31 부산이야기 9월호 통권 143호
자료출처 : 다이내믹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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