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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802호 기획연재

오래된 벚나무가 고요히 물소리 껴안는 곳, 거기 작은 책의 숲

부산, 걷다 읽다 반하다 - 온천천 카페거리와 동네책방 숲

내용

오래된 벚나무들의 몸속에서는 밤새 뿌리와 가지가 자란다. 강가의 나무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강바닥을 흐르는 물줄기를 향해 나아간다. 천천히, 느리게. 마침내 강에 도달한 나무는 가느다란 실뿌리를 뻗어 목을 축인 후 맑은 강물을 몸속으로 흘려보낸다. 강을 떠나 나무에게로 흘러온 물은 나무를 키우고 나무의 가지를 키운다. 뿌리에서 가지 끝까지 길고 오랜 여행을 한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는다. 수맥을 흐르던 물방울들은 제가 태어난 곳, 온천천의 물소리가 흐르는 방향으로 물길을 잡는다. 이곳의 나무들이 강을 향해 긴 팔을 뻗고 있는 이유다. 오래된 나무들이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숨죽이며 도열해있는 천변. 부산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온천천에는 가을 햇살이 깊고 맑다.

 

부산을 대표하는 도심생태하천인 온천천에 카페거리가 조성되면서 새로운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도심생태하천인 온천천에 카페거리가 조성되면서 새로운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도심 생태하천으로 주목을 받던 온천천에 새로운 풍경이 들어섰다. 둑방에 서면 잘볶은 커피 향기가 코끝을 감싸고, 연이어 국수 삶는 냄새와 향긋한 빵 냄새가 코를 간질이다가 기어이 미각을 자극한다. 

 

도심생태하천의 모델로 사랑받았던 온천천이 책과 카페가 있는 이색 공간으로 변신중이다. 숭어가 펄떡이는 강에는 왜가리가 찾아오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도시가 허락한 자연 풍광속으로 걷던 길에 책과 미각이 더해졌다. 이제 온천천을 걷는다는 의미는 하늘과 바람과 숲과 물소리를 따라 걸은 후 커피 한 잔과 허기를 채워주는 따뜻한 음식을 함께 누릴 수 장소로 변신했다.

 

온천천에서 늦가을의 정취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
▲온천천에서 늦가을의 정취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 

 

가을이 깊어 물소리가 발자국을 지우는 온천천에 나간다. 지금 이곳의 주인은 단풍 물든 벚나무들이다. 천변의 양쪽으로 줄지어 선 나무들은 수굿하게 고개를 숙이고 붉은 잎사귀를 대지로 돌려보낸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맑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와 징검다리를 건너는 소년소녀가 까르르륵 투명한 웃음을 터뜨린다. 방죽을 바라보며 줄지어선 카페에는 가을햇살을 받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물소리를 따라 흐른다. 고요하고, 평온한 풍경을 걷다 보면 또다른 숲을 만난다. 소규모 서점 책방숲이다. 카페거리에 있는 작은 책방은 온천천의 표정을 바꾼다. 소비의 공간에서 생산의 공간, 문화의 공간으로 전환하는 작은 이정표다.

 

책방숲은 지난해 3월 문을 열었다. 책방 주인인 김영숙 이지영 씨는 고교 동창이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두 사람은 삼십대 중반을 맞아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디자인 스튜디오를 겸한 독립서점을 열기로 했다. 두 사람은 온천천 주변을 두달동안 물색해 가게를 구하고, 책방을 열었다. 책방숲은 삼십대 두 여성의 모험심과 호기심으로 탄생했다. 

 

온천천에 자리잡은 소규모 서점 책방숲.
▲온천천에 자리잡은 소규모 서점 책방숲. 

 

디자인 전문 서점인 책방숲은 조금 다른 책방이다. 일반서점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디자인 관련 책과 주인들이 좋아하는 책을 소박하게 진열하고 있다. 한마디로 주인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책이 대부분이다. 여기에다 독립출판사에서 펴낸 책들까지, 한마디로 이곳은 대안의 공간이다. 책방은 온천천에서 주택가쪽으로 살짝 들어와 있다. 카페거리를 산책하던 이들은 세련되고 이국적인 카페의 틈바구니에 숨어있는 책방을 발견하고 놀란다. 간판도 없다. 이런 곳에 책방이 있네, 라며 호기심으로 들어왔다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낯설고 신기한 책방의 매력에 빠진다. 책방숲은 책의 숲이고, 종이의 숲이고, 주류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대안문화를 일구는 작은 꿈틀거림으로 손님을 매혹시키는 공간이다.

 

온천천의 물소리와 강으로 팔을 뻗어 자라는 오래된 벚나무의 갸륵한 몸짓을 따라 걷다가 소규모 서점 책방숲에 드는 것은 온천천 산책을 더욱 빛나게 하는 순순한 마침표다. 마침표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둑길을 걸은 후 책방에 들러 책의 숲에서 어슬렁거리거나, 책방숲에서 나와 둑길을 걷는 것은 다르면서 같다. 그 길의 끝에서 길을 나서는 이들은 만난다. 바람소리와 물소리, 아늑한 책의 향기. 갓볶은 커피콩과 갓 구운 향긋한 빵 냄새가 더해진다면, 길을 나선 기쁨이 몸속에서 오도독 터진다. 부산을 걸으며, 가을 둑방을 산책하며 만나는 부산의 아름다움이 가을햇살처럼 차오른다. 오래된 벚나무의 단풍은 붉게 타오르고 있다.

 

# 책방숲:부산시 동래구 온천천로 431번길 25-1. 전화 (070-8869-5690)

작성자
글·김영주 / 사진·권성훈
작성일자
2017-11-1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802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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