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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천년 고찰 품은 고요하고 맑은 선<禪>의 나무

한자리서 600년 지켜온 나무 … 더위 식히는 그늘로 안성맞춤

내용

시간은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든다. 흩어진 파편들을 모으고 뭉친다. 시간은 사물과 사물의 틈을 메우고, 이어 붙인 후 하나의 존재로 만든다. 오래 산 부부가 닮았듯이, 오래된 집이 주인을 닮았듯이 오래된 집과 나무도 마침내 하나로 오붓하다. 부산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 금정총림 범어사 경내에는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경내에 막 들어서기 전 주차장 한켠에 우뚝 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가 은행나무다. 

 

범어사 은행나무는 600년 동안 범어사를 지키며 범어사와 함께 했다. 이곳을 오가는 중생들의 간절한 기도소리가 키워낸 나무는 이제 스스로 기도하는 나무가 됐다. 사진·권성훈
▲범어사 은행나무는 600년 동안 범어사를 지키며 범어사와 함께 했다. 이곳을 오가는 중생들의 간절한 기도소리가 키워낸 나무는 이제 스스로 기도하는 나무가 됐다. 

 

범어사 은행나무는 시공간을 한 덩어리로 뭉치는 시간의 풍화작용을 무심하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무 앞에 세워진 팻말은 이 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수종 은행나무. 수령 580년. 수고 25m. 나무둘레 6.6m, 지정번호 2-11-16-0-1, 지정일자 1980년 12월 8일. 
 

1980년에 부산시 보호수로 지정됐다는 내용이다. 차가운 금속 팻말에 새겨진 글자는 냉랭하게 나무의 연대를 알려줄 뿐이지만, 잠시 나무에 기대어 나무의 말에 귀 기울여 본 이라면 안다. 측정된 숫자와 분절되는 음절 사이에 흐르는 나무의 오랜 시간을, 나무의 수맥과 수피에 새겨진 거친 시간과 상처를, 낮은 독경 소리와 계곡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그리하여 긴 시간을 인고한 후 우묵하게 서 있는 나무가 고요하고 맑은 선정에 든 선(禪)의 나무라는 것을.
 

범어사는 부산을 대표하는 천년 고찰이자 부산시민들이 즐겨 찾는 영혼의 휴식처다. 범어사가 세운 안내판에 따르면 "임진왜란 후 노승 묘전 스님께서 옮겨 심었고 은행이 열리지 않아 300년 전에 절에서 맞은편에 은행 수나무 한 그루를 심어줘 그 후부터 한 해 약 30여 가마의 은행을 따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것과 "범어사의 역사를 알고 있는 장수목"이라고 알려준다. 

 

고요한 범어사 경내. 범어사 은행나무는 범어사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진·권성훈 

▲고요한 범어사 경내. 범어사 은행나무는 범어사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때(678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천300년이 넘은 고찰이다. 은행나무는 천년 고찰과 600년을 함께 했다. 절집을 드나든 뭇 중생들의 간절한 염원과 눈 맑은 선승들의 독경소리에 초록의 귀를 열고 청정도량의 기운을 그득하게 담아냈을 것이다. 초록의 잎과 거친 수피 안에서 맑은 독경소리가 들리는 이유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에는 그대로 선정에 든 붓다같다. 범어사 은행나무는 600년을 견뎠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600번 몸을 바꾸는 동안 제 안의 먼지를 털어내고 스스로 기도하는 나무가 됐다. 이글거리는 한여름의 햇살 아래에서도 나무 그늘 속으로 깃들면 서늘해지는 이유다. 범어사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던 걸음을 잠시만 돌려 늙은 나무에게 안부를 묻고 간다면, 거기 거짓말처럼 천년 고찰과 꼭 닮은 한 그루의 늙은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나무가 품은 천년 고찰의 역사와 숨결이 선(禪)의 나침반처럼 초록의 잎사귀로 반짝인다. 

 

범어사 계곡은 피서지로도 손색이 없다.  사진·권성훈
▲범어사 계곡은 피서지로도 손색이 없다. 

 

작성자
글·김영주 / 사진·권성훈
작성일자
2017-07-2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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