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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타박타박·쉬엄쉬엄… 숲길에서 찾는 여유와 행복

갈맷길 700리⑪ 부산의 숲길
부산 속살·풍경 즐기는 재미 몸과 마음 느리게 걷자 속삭여

내용
금정산 범어사.

바다가 좋을까, 산이 좋을까. 둘 다 좋다. 바다는 바다라서 좋고 산은 산이라서 좋다.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그렇게 물어보고 다닌 적이 있다. 대답은 사람마다 달랐다. 절반은 바다를 좋아한다고 했고, 나머지 절반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어떨까. 젊을 때는 바다가 좋았고 젊음을 보낸 지금은 산이 좋다. 바다와 산 둘 다 듣기 좋아라고 지어낸 말이 결코 아니다.

부산 갈맷길 숲길은 삶의 청량제

산은 왜 좋은가. 바다에 견줘 무엇이 다른가. 그 대답 또한 사람마다 다르리라. 나는 무엇보다 바람이 달라서 좋다. 바닷바람은 몸에 달라붙을 듯 끈적대지만 산바람은 몸에 달라붙은 것을 털어내듯 홀가분하다. 바닷바람이 악착같다면 산바람은 경상도 사투리로 '헐빈하다'. 하루하루 삶이 곧 전쟁터인 요즘 세상에 악착같이 사는 게 허물이 되겠냐만 그런 삶에 지치고 회의가 들 때 헐빈한 산바람은 답답한 속을 씻어주는 청량제다.

부산은 '사포지향(四包之鄕)'이다. 산과 바다와 강과 온천, 네 가지를 두루 품은 곳이 부산이다. 사포 가운데 하나가 빠졌거나 둘이 빠진 도시가 수두룩한데 네 가지를 다 품은 부산은 어디 내놓아도 당당하고 빛나는 도시다. 부산을 대표하는 길, 갈맷길 9코스 20구간도 사포를 따라 이어지고 사포를 따라 나아가기에 어디 내놓아도 당당한 길이고 빛나는 길이다.

해안길과 숲길은 사포지향 갈맷길 20구간을 편의상 두 갈래로 나눈 길이다. 바다를 끼고 있으면 해안길, 바다를 끼지 않으면 숲길로 나눈 것이다. 지난 호 갈맷길 해안길을 소개하면서 언급한 대로 갈맷길 9코스 20구간 가운데 해안길과 숲길은 각각 10구간이다. 오륙도 유람선선착장에서 출발해 신선대 산을 넘어 유엔기념공원, 부산진시장, 증산, 초량성당, 국제시장, 남항대교로 이어지는 3코스구간은 바다에서 출발해 바다로 끝나지만 바다를 끼고 걷는 구간이 아니므로 숲길에 넣었다.

낙동강 강변길을 걷다가 백양산을 거치는 7코스 두 구간과 금정구 상현마을 오륜대에서 출발해 원동교와 좌수영교를 거쳐 수영강 하구에서 끝나는 8코스 두 구간 역시 비슷한 이유로 숲길에 넣었다.

부산 갈맷길 숲길을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완만하게 휘어진다. 송곳처럼 뾰족하던 마음이 둥글어지고 모난 마음은 깎여서 수더분해진다(사진은 갈맷길 가덕 코스).

몸·마음에 쌓인 시름 덜어주는 숲길 걷기

갈맷길 숲길 구간은 다음과 같다. 코스와 구간은 갈맷길 원래 코스와 구간이다. △오륙도 유람선선착장-신선대-유엔기념공원-부산외대-부산진시장-증산공원-초량성당-국제시장-자갈치시장-남항대교(3코스구간, 27.3㎞ 9시간) △낙동강하굿둑-낙동강사 문화마당-삼락생태공원-삼락IC-구포역-백양터널-운수사-선암사-성지곡수원지(6코스구간, 36.2㎞ 11시간) △성지곡수원지-만덕고개-금정산 남문-동문-북문-범어사-노포동고속버스터미널-스포원파크-부산톨게이트-선동 상현마을(7코스구간, 22.3㎞ 9시간) △상현마을-오륜대-명장정수사업소-동대교-석대다리-원동교-과정교-좌수영교-APEC나루공원-민락교(8코스구간, 17.2㎞ 5시간) △상현마을-장전2교-장전마을(철마면사무소)-보람교-이곡마을-테마임도공원-모연정-기장군청(9코스구간, 20.5㎞ 6시간).

부산 갈맷길 숲길은 산악자전거 동호인들도 즐겨 찾는다.

부산 갈맷길 숲길은 산바람이 그러하듯 헐빈한 길이다. 완만하게 휘어져 이어지고 나아가는 숲길을 걷다보면 마음도 완만하게 휘어진다. 송곳처럼 뾰족하던 마음이 둥글어지고 모난 마음은 깎여서 수더분해진다. 악착같이 쥔 주먹을 펴게 하고 악착같이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게 한다. 몸과 마음에 달라붙은 것을 털어내며 걷는 홀가분한 길, 그게 갈맷길 숲길이다.

숲길이 좋은 점은 또 있다. 그늘이다. 해안길이 그늘에 인색하다면 숲길은 그늘에 너그럽다. 숲에 들기까지가 버거워서 그렇지 일단 숲에만 들면 한시름 놓는다. 숲길 그늘은 인생의 그늘을 돌아보게 한다. 살면서 늘 좋은 날만 있지는 않을 테고 인생의 굴곡마다 그늘은 진다. 그러나 그늘 없는 삶은 얼마나 더울 텐가. 인생의 굴곡. 쭉쭉 곧게 뻗은 나무보다는 이리 비틀리고 저리 뒤틀린 나무가 그늘이 넓다. 품이 넓다.

수영강변 APEC나루공원 모습.

숲길, 첫 걸음은 오륙도 선착장에서

숲길 시작은 오륙도 선착장. 출발은 바닷가에서 하지만 신선대 산을 하나 넘고 유엔공원과 시내를 거쳐 동구도서관이 있는 좌천동 증산을 또 넘기에 숲길로 봐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다. 오륙도 선착장은 인기몰이가 한창이다. 안 그래도 풍광 빼어난 곳에 명물이 또 들어선 덕분이다. 10월 중순 들어선 명물은 스카이 워크. 우리말로 풀이하면 '하늘길'쯤 된다. 승두말 해안 절벽에서 바다 방향으로 튀어나온 전망대를 말하는데 바닥이 투명유리라 발아래 절벽이며 풍광이 한여름 공포영화보다 아찔하다.

유엔공원은 그것만으로도 책 열 권을 쓰고도 남는다. 평화의 상징 유엔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다. 세계평화와 자유를 지키려 목숨 바친 2천300여 유엔군이 안장돼 있다전쟁 이듬해인 1951년 전사자를 안장하려고 유엔군사령부가 조성했고 평화수목원, 조각공원, 부산박물관, 문화회관 등이 유엔공원을 보호하듯 에워싼다.

동구도서관이 있는 증산은 내력이 담긴 지명이다. 부산의 뿌리가 증산이다. 증산의 원래 이름이 바로 부산이다. 지금은 꼭대기가 펑퍼짐한 산이지만 임진왜란 이전까진 꼭대기가 가마솥 솥뚜껑처럼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가마솥 '부(釜)'를 써 산 이름이 부산이었다. 그러던 게 임란 때 이 곳을 점령한 왜군이 왜성을 쌓으면서 꼭대기를 허무는 바람에 그만 떡시루처럼 펑퍼짐하게 됐다. 그래서 그 이후 시루 '증(甑)'을 써 증산이라 불린다.

부산을 대표하는 길 갈맷길은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 내놓아도 당당한 길이고 빛나는 길이다(사진은 성지곡수원지 숲길을 걷고 있는 시민 모습).

부산 속살 보며 걷는 재미 솔솔

증산 동구도서관을 지나면 산복도로가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산 중간 중간 도로를 낸 산복도로는 가진 것 없이 전국 각처에서 몰려든전쟁 피란민의 애환과 한국 근현대사 질곡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인생의 굴곡이 그늘을 짙게 만들어 사람을 품듯 역사의 질곡 역시 그늘을 짙게 만들어 사람을 품는다. 부산항을 내려다보며 구불구불 걷는 산복도로 갈맷길 3코스 2구간은 부산이 왜 부산인가를 보여주는 부산다운 길이다.

부산 갈맷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산복도로와도 만난다(사진은 산복도록에 들어선 김민부전망대).

걷는 게 불편한 이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산복도로 투어버스가 내년 3월까지 주말마다 다닌다. 부산역에서 매주 토일 오전 10시, 오후시 3차례 출발한다. 오후 7시 버스는 야간경관 투어다.

부산역을 출발해 동구 매축지마을-안창마을-수직농장-까꼬막-유치환의 우체통-장기려 더 나눔-이바구공작소-168계단-김민부전망대-디오라마 전망대-금수현의 음악살롱-색채마을-서구 비석마을-한마음행복센터를 둘러본다. 투어 시간은 2시간에서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버스투어는 무료이며 천연염색 손수건 만들기 등 체험비는 5천원이다. 문의는 동구 홈페이지나 건축과(440-4611∼4), 이바구공작소(468-0289).

낙동강 하굿둑에서 출발하는 갈맷길 6코스 숲길은 강바람에 떠밀려 훠이훠이 걷는 길이다. 처녀뱃사공 노랫가락에 떠밀려 흥얼흥얼 걷는 길이다. 길 폭은 두 사람이 걸어가면 딱 맞을 만큼 좁지만 동행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는 즐거움이 있다. 해 지는 시각 이 길을 걸으면 누구라도 얼굴에 노을이 든다. 얼굴도 노을 들고 마음도 노을 들어 누구라도 새신랑 새신부 같다.

길 위에서 만나는 부산 음식 '재첩국'

걷다가 오른쪽 둑을 넘어가면 사상구 재첩국 거리.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근 엄궁을 비롯해 이 일대 재첩국이 곳곳으로 퍼져나가 '재첩국 사이소!'하고 부산의 새벽을 깨웠다. 사상구에서 오래 산 이선형 시인은 여기 골목 담벼락마다 재첩 껍데기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할매재첩국'이니 '하동재첩국'이니 이름만 들어도 속이 시원하게 풀리는 음식점 간판들이 추억의 맛을 고스란히 지니고서 지나가는 사람들 발목을 붙잡는다.

구간 2코스부터 7코스구간은 백양산과 금정산 '삐알'이다. 등산은 빨리 가는 게 능사가 아니라 오래 머물러야 현명하다. 백양산과 금정산 숲길을 느릿느릿 걷다 보면 내가 산이고 산이 나다. 산바람이 나를 훑고 지나가면서 내 몸 내 마음에 달라붙은 내 것 아닌 것을 털어낸다.

해발 641m 백양산은 은은한 절을 품고 있다. 구름이 물처럼 흐른다는 운수사(雲水寺)다. 요즘은 교통이 좋고 길이 좋아 그렇지 그 옛날엔 구름이 에워쌌을 만큼 깊은 산골짝이었음을 이름에서 짐작한다.

세기 편찬된 지도책에는 범어사 선암사와 같은 시기에 지은 절이라고 나온다. 사상8경 하나가 운수모종(暮鐘)이다. 낙동강 강변까지 울려 퍼지는 운수사 저녁 종소리가 그만큼 그윽했으리라. 두꺼비바위 전설이 전해진다.

금정산은 부산에서 가장 높고 깊은 산이다. 높이가 가장 높은 산이고 절 역사가 가장 깊은 범어사가 깃든 산이다(사진은 범어사 숲길을 걷고 있는 시민들).

백양산을 지나면 금정산. 금정산은 부산에서 가장 높고 깊은 산이다. 높이가 가장 높은 산이고 절 역사가 가장 깊은 범어사가 깃든 산이다. 그래서 금정산에 들면 누구라도 높고 깊어진다. 금정산 산성을 걸으며 내려다보는 부산은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는 부산과 또 다르다. 그러면서 같다.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른 부산! 부산은 그만큼 방대하다. 그만큼 높고 깊다.

금정산을 다 내려오면 오륜대가 있는 회동수원지로 가는 길. 오르막도 끝나고 내리막도 끝난 평지다. 우리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그 끝은 평지였으면 좋겠다. 평탄했으면 좋겠다. 욕망에서도 벗어나고 체념에서도 벗어난 평지, 그 길이 회동수원지를 끼고 걷는 갈맷길 8코스구간과 9코스 첫 구간이다.

꽃잎에는 꽃잎보다 얇은 / 꽃잎의 막이 있다 / 누군가의 막이 된다는 건 / 그 누군가보다 얇아진다는 것 / 그대보다 얇아지지 않고서 / 내 어찌 그대의 막이라 하리 / 얇아도 얇지 않는 꽃잎과 / 꽃잎보다 얇은 꽃잎의 막
-동길산 시 '꽃잎의 막'.

갈맷길 숲길 마지막 구간은 오르막. 주눅들 것은 없다. 5분 고생하면 3시간 가까이 평지가 이어진다. 평지는 기장군에서 조성한 일광테마임도. 꽃은 꽃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테마별로 가꾼 길이라 곳곳에 철따라 피는 꽃과 철따라 잎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지금은 늦가을 지난 초겨울. 지금 피는 꽃잎은 아침저녁 얼마나 추울 텐가. 꽃잎보다 얇은 꽃잎의 막은 그런 꽃잎이 안쓰러워 꽃잎을 감싸고 있을 것이다.

꽃잎도 꽃잎의 막도 심금을 울리는 이 초겨울. 심금, 마음의 금을 울리며 걷는 길이라야 비로소 길다운 길이고 그런 길 하나가 부산을 대표하는 길, 갈맷길이다.<끝>

작성자
부산이야기 2013년 12월호
작성일자
2013-12-1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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