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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최우수] 아버지의 외출

내용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시간이었다. 당뇨병과 고혈압 증세가 있는 아버지는 지금껏 응급실에 실려 가는 고비를 몇 차례나 넘겼다. 그때마다 우리 가족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렇게 건강이 나빠진 건 젊은 시절, 베트남전 참전으로 인한 고엽제 후유증 때문이다. 아버지는 결국 건강악화로 오랫동안 근무하신 회사에서 퇴직하셨다. 아직 더 일할 수 있는 연세에 갑작스레 회사를 그만두게 되자 우리 가족은 걱정이 앞섰다. 많지 않은 퇴직금으로 네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어머니의 한숨이 깊어졌다. 원래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퇴직 이후 더욱 말씀이 없으셨다. 아마도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가 회사원이었을 땐, 술에 취해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도 가족과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그런 아버지와 온종일 함께 있는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가장 가깝게 지내는 가족이지만 함께 나눌 얘깃거리가 없었다. 아버지는 집에 있는 시간 대부분을 서재에서 보냈다. 서재의 장식장엔 아버지의 보물이 들어있다. 바로 베트남전 참전수훈메달이다. 하지만 난 메달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피 끓는 젊음을 바친 아버지께 고엽제 후유증이라는 굴레를 씌워준 전쟁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버지가 참전하지 않았다면 이런 고통은 받지 않았을 텐데 하는 원망의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아버지는 소중한 보물인 것처럼 메달을 보고 또 보셨다. 아버지에겐 메달이 팍팍한 삶의 위안인 듯 보였다. 그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을 누비던 용맹한 군인이었지만, 사회라는 전쟁터에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을 곳 하나 없는, 외로운 노년의 가장일 뿐이다.

오래전 일이 아직도 기억난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아버지는 나의 물집투성이 발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보였다. 아마도 자신의 힘겨웠던 군 시절이 생각나서일 것이다. 언제나 강한 분인 줄 알았던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본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가장으로서 위엄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참았을 뿐, 아버지 역시 마음 여린 남자라는 걸 그때 알았다.

별다른 활동 없이 집에만 계신 아버지는 점점 의기소침해졌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의 축 처진 뒷모습에서 야망과 열정을 잃어버린 남자의 쓸쓸함이 보였다. 그러던 아버지가 언젠가부터 일주일에 서너 번씩 집을 나갔다. 우리 가족은 행선지를 묻지 않았다. 회사에 출근할 때처럼 외출하시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기적으로 나가는 볼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건강 때문에 끊은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어봐도 속 시원히 대답해주지 않았다. 워낙 표현에 인색했기에 도통 내막을 알 순 없었지만 무언가 새로운 활동을 시작한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퇴직 후 새로운 사업을 하려다 사기꾼에게 속아 퇴직금을 모두 날려버린 가장에 관한 뉴스보도를 볼 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경이 쓰였다. 아버지가 남의 말을 의심 없이 잘 믿는 성격이라 사기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확인되지 않은 추측은 불안감만 증폭시켰다. 결국, 행선지를 따라가 보기로 하고, 아버지가 타는 버스에 몰래 몸을 실었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날 알아볼까 봐 조심하며 동행했다. 다행히 승객들로 붐비는 버스 안에서 난 아버지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달리던 버스가 UN기념공원 앞 정류장에 멈췄을 때, 난 아버지를 뒤따라 하차했다. 아버지는 곧장 UN기념공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 의아했다.

'여기엔 무슨 일로 오신 걸까?'

난 궁금증을 잠시 접어두고 아버지를 쫓아 공원으로 입장했다. 아버지는 공원을 관장하는 사무소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열 명 남짓한 외국인 관광객과 함께 나왔다. 난 관광객인 척하며 은근슬쩍 아버지를 뒤따라갔다. 명찰을 목에 걸고 있는 아버지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유창한 영어로 UN기념공원에 대해 설명했다. 아버지는 바로 문화관광해설사였다.

아버지가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난 너무 뜻밖이라 멀거니 바라보았다. 해설하는 아버지의 표정에 생기가 넘쳤다. 집에서 보던 표정과는 너무나 달랐기에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외국인 관광객은 아버지의 해설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해설이 끝나자 그들은 감사의 말을 전하며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아버지는 미소로 답했다. 그렇게 환하게 웃는 아버지의 얼굴을 정말 오랜만에 본 것 같다. 외국인 관광객이 자리를 떠난 후, 난 아버지께 다가갔다.

"아버지!"

"니가 여기 웬일이냐?"

아버지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난 아버지의 목에 걸려있는 명찰을 가까이서 보았다. '문화관광해설사' 글귀가 낯설게 느껴졌다. 내게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명함이 전부였으니까.

"이 일, 언제부터 준비하신 거예요?"

"퇴직하면서부터. 여가도 활용하고, 적은 돈이지만 수입도 생기니 나 같은 사람한텐 제격이지.

퇴직 후 무기력한 모습만 보였던 아버지가 남몰래 새 일자리를 준비해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과연 난 아버지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고, 한편으로는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아버지가 야속했다.

"왜 그동안 말하지 않았어요?"

"예전 봉급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라…… 한 달가량 활동비를 모았을 때 말하려 했는데, 들키고 말았구나. 허허."

당당히 모은 돈을 가족에게 전하며 인생 2막을 알리려 했던 아버지는 계획이 들통 난 것에 머쓱해했다. 돈의 액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가족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짠했다.

"아버지, 좀 쉬셔도 괜찮아요. 그동안 저희 뒷바라지하느라 쉴 틈 없이 일하셨잖아요."

"돈 버는 게 다가 아냐. 이 일 하면서 그보다 더 값진 걸 얻었어."

"그게 뭔데요?"

아버지는 공원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말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내 청춘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믿음을 얻었어. 이곳에 모시고 있는 UN군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것처럼, 나 역시 세계평화에 조금이나마 공헌했다고 생각해. 아들, 이만하면 자부심 느낄 만하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잔잔한 미소를 짓는 아버지의 표정이 한없이 편안해 보였다. 아버지의 참전과 갑작스러운 퇴직을 원망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삶의 당당한 주인이었다.

우리는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부자간의 속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소중한 그 시간을 통해 아버지가 자식과의 진솔한 대화에 얼마나 목말라 했었는지 알게 됐다. 아버지는 내게 편안한 친구였고, 믿음직스러운 멘토였다. 이렇게 잘 통하는 아버지와 그동안 왜 마음의 벽을 쌓았던 걸까. 돈 벌어오는 가장의 막중한 책임감이 아버지의 입을 무겁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전장에서 용감히 청춘을 불사르고, 가족을 위해 늙도록 희생한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난 오늘, 아버지의 메달에 쌓인 먼지를 광이 나도록 닦아줄 것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작성자
정경환(부산시 구서동)
작성일자
2012-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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