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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우수] 생선가게 홈런왕

내용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 부산갈매기, 부산갈매기….”

진구 아저씨는 오늘도 목이 쉬어라 '부산 갈매기'를 외치면 사직야구장의 밤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구 아저씨의 곁에는 사직야구장의 그 수많은 응원단 중 단 한 명도 옆에 가지 않고 늘 혼자였습니다. 그건 진구 아저씨한테서 나는 생선 비린내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그런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목 놓아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야구공을 향해 열정을 담은 함성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진구 아저씨는 '최동원 선수'의 놀라운 투구에 감동을 받고 초등학교 6학년에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아저씨는 남들보다 큰 덩치로 촉망받는 홈런타자이자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였습니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최동원 선수'처럼….

그런 아저씨가 야구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은, 대구에서 있었던 시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난 교통사고 때문이었습니다. 아저씨의 왼쪽 다리는 완전히 망가져서 더 는 뛸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며칠 동안의 사경을 헤매고서야 깨어난 아저씨는 야구를 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2년 동안이나 폐인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진구 아저씨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은 아저씨의 오래된 친구이자 지금은 아내가 된 미선이 누나 덕분이었습니다. 누나는 어린 시절부터 진구 아저씨와 동네친구였는데, 사고가 난 후 폐인처럼 지내던 아저씨를 위해 언제나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습니다. 사실 누나는 아저씨를 옛날부터 좋아했었다고 했습니다. 사고가 난 지 2년 만에 아저씨의 다리에서 철심을 제거하는 날, 아저씨는 누나의 마음을 받아주었습니다.

"아주매, 와, 이거 엄청 싱싱하다 아입니꺼. 팍 내가 보장한다이까요."

진구 아저씨는 사고가 난 지 4년이 지난 지금, 아저씨가 그렇게 좋아하던 고등어와 싱싱한 생선을 파는 생선가게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 가게는 미선이 누나의 아버지가 하시던 가게였는데, 평생 야구만 하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진구 아저씨에게 미선 누나의 아버지는 일을 가르쳐 주시고, 이제는 가게도 물려 주셨다네요. 아저씨는 생선가게를 찾는 아줌마들에게 엄청 인기가 많습니다. 잘 생기고 서글서글하게 말도 정감 있게 하는 아저씨의 생선가게는 금방 시장에서 유명해졌습니다.

“야 이 자슥아 그거도 하나 몬 받으면 우야노. 똑띠해라 똑띠….”

작년 여름, 아저씨는 꿈에 그리던 야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저씨가 직접 야구를 하는 건 아닙니다. 아저씨는 가끔 고등어와 생선을 가져다주던 '자애의 집' 아이들을 데리고 '자애스'라는 리틀 야구단을 만들었습니다. 미선 누나의 제안으로 시작한 이 야구단은 적극적인 지원과 응원은 아저씨가 다시 야구공을 잡는데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아저씨는 그 이름도 거창한 '자애스' 감독님이 되신 겁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아저씨는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자애스' 아이들과 훈련을 하십니다. 아마 그렇게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는 진구 아저씨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건 그 순간뿐 일 겁니다.

“당신 괘아나요?”

야구 훈련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아저씨는 늘 미선 누나의 부축을 받으며 다리를 절고 힘겹게 걸음을 옮기곤 합니다. 아마도 오늘 밤새 미선 누나는 퉁퉁 부은 아저씨의 다리를 찜질하며 지새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른 새벽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서 생선가게로 나가겠지요? 다리는 여전히 아프겠지만 '자애스' 아이들이 야구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얼굴을 생각하면 아저씨에게 이 정도 통증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진짜 너무하는 거 아이예요?”

“아이다. 조기 교육이 중요한 기라….”

아저씨는 올해 겨울 아빠가 됩니다. 아저씨는 벌써 태어날 아기를 '최동원 선수' 같은 야구선수를 시키겠다며 요란스럽습니다. 5년은 지나야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야구복과 야구 장비를 벌써부터 사 모으고 있으니까요. 조기교육이 중요하다며 아기방은 야구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며 미선 누나의 푸념이 나날이 커져만 간답니다. 그러나 미선 누나도 그런 아저씨가 싫지 않은 듯합니다. 아저씨의 못다 이룬 꿈을 아이를 통해서 펼칠 수 있다면 그보다 아저씨를 행복하게 하는 건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일 겁니다.

“우와, 이기 아들 머리 좋게 하는데 최고라 아입니꺼. 세 마리 만원만 주이소.”

여전히 생선가게에서 목소리를 높여 열심히 일하는 진구 아저씨는 미선 누나의 생일날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으로 예쁜 반지를 하나 샀습니다. 그 반지에는 '내 최고의 홈런'이라는 문구도 새겨 넣었습니다. 직접 그라운드를 뛸 수는 없지만, 자신의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 준 그녀가 진정 자신의 삶의 홈런이라는 의미로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꿈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제나 꿈은 자신의 곁에서 다시 그 꿈을 향해 뛰기를 기다린다는 말…. 아저씨의 생선가게 벽에 아내와 아이의 사진 옆에 붙어있는 소중한 말입니다.

작성자
심우찬(서울시 등촌동)
작성일자
2012-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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