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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010호 문화관광

부산민속·영도 문화 원형질 집대성 방대한 민속학 보고서 나왔다

부산시-국립민속박물관 `부산 문화 주제별 보고서'`영도 민속문화 보고서' 펴내

내용

 부산 민속문화를 집대성한 보고서가 나왔다.
 부산시와 국립민속박물관은 `2021년 부산민속문화의 해' 사업의 하나로 부산의 특색있는 문화를 조명한 `주제별 조사 보고서'(총 5권)와 부산 영도의 민속문화를 탐구한 `영도 민속조사 보고서'(총 5권)를 발간했다.


영도민속문화보고서02

영도 민속조사 보고서.


 `부산민속문화의 해' 사업은 사라져가는 부산의 민속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부산시와 국립민속박물관이 올 한 해 동안 추진하는 사업이다. 현장조사와 연구, 특별전, 학술대회 등으로 진행됐다.
 부산시와 국립민속박물관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주제별 조사 △영도와 가덕도 조사 △동제 전수 조사 △한국민속학자대회 △부산특별전 등을 순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중 주제별 조사는 부산의 민속문화를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주요 테마를 선정, 심층적으로 진행했다. 이번에 발간한 주제별 조사 보고서는 2019년부터 1년여간 부산의 전문가 5명이 △길이 만든 부산 △국제시장 △좌천동 가구거리와 자개골목 △낙동강 하구 재첩마을과 재첩잡이 △아미동 등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연구 결과물이다.
 영도 민속조사는 부산의 민속문화를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영도 지역에 대한 종합적 민속조사다. `영도 민속조사 보고서'는 2019년부터 1년여간 국립민속박물관과 외부 전문가가 진행했던 △영도 대평동(깡깡이 마을) 조사 △영도 해안가의 해양민속조사 △영도 사람들의 삶과 이주 등 세 가지 주제에 대한 연구 결과물이다.
 보고서는 단순한 보고서를 뛰어넘는다. 인간 삶이 영위되는 시공간으로서 주거, 음식, 길 등 일상의 공간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어서 그 자체로 부산 문화와 정서의 원형질을 담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부산의 민속문화를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한 결과물로, 향후 부산의 민속문화를 대내외에 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속자원과 문화관광 상품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길마다 독특한 시대·지역적 특색
 `부산 주제별 조사 보고서' 중 `길이 만든 부산'은 부산과 외부로 통하는 `길'을 매개로 부산의 변화를 조망한다. 부산은 한반도의 끝이기도 하지만, 유라시아 대륙의 시작이기도 하다. 경계로서의 부산은 다방면과 소통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공간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길'을 통해 사람, 물건, 문화가 이동하고 교류하면서 유기적으로 변화해온 부산의 모습을 담았다.

좌천동 자개골목 마지막 공방 `일호공예'
 `좌천동 가구거리와 자개골목:사람과 공예 기술'은 부산의 공예산업을 부흥시켰던 본산지인 좌천동 자개골목의 역사와 흔적을 탐구한 보고서다. 자개골목을 지키고 있는 마지막 공방인 `일호공예'와 평생을 자개와 함께 살아온 절삭공 이일환 씨 등 자개골목의 화려했던 명성을 간직한 채 아직도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남 지역에서 `나전칠기'하면 대부분 통영을 떠올리지만 정부의 산업경제부흥과 수출진흥정책에 맞물려 동구 좌천동은 남부 지방 최대의 나천칠기 밀집지역으로 유명했다.
영도에 왜 호남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을까?
 `영도 민속조사 보고서'는 길부터 시작한다. 영도에는 전라도 출신이 많이 산다. 호남 중에서 완도, 청산도, 고흥 나로도 사람들이 특히 많다. 이들은 대개 일제강점기때부터 발달한 수산업과 해운 항로를 통해 부산에 정착했다. 1950년대 저인망 어업으로 나로도에서 어획된 수산물은 부산 어시장에서 판매됐는데, 선주들은 어로 준비와 판매망 확보를 위해 부산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먼저 정착한 선주들은 고향 사람들을 불러 선원으로 승선시켰고, 선원의 이주는 자연스럽게 가족을 동반하게 됐다.

​상인들이 증언하는 국제시장 변천 과정
 `국제시장'은 부산을 대표하는 시장인 국제시장을 탐구했다. 국제시장의 75년 역사와 시장을 이끄는 상인조직인 번영회를 살펴보고, 10개 점포를 중심으로 국제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 국제시장에 인접한 부평깡통시장, 만물의 거리, 아리랑거리, 신창상가(케네디 시장)를 소개한다.
 국제시장 번영회에서 발간한 1982년, 1990년, 2004년 상가 전화번호부를 분석한 결과는 국제시장 변천사와 1980년대 이후 부산 경제의 한 흐름을 보여준다. 섬유류, 일반 잡화류, 철물·기계 공구·전기용품류, 양품 잡화류, 주방 기구·칠기제품류, 건어물·청과·기호품류 등 여섯 가지 유형이 국제시장의 대표 품목으로 손꼽힌다. 대표 품목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가방과 문구류가 많았는데, 최근 들어 급부상한 품목은 민예품과 전통 공예품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으로 관광객이 늘어난 것과 관련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산업도시 영도 대평동의 역사와 민속문화 고찰
 
‘영도 대평동 민속지(Ⅰ,Ⅱ)’는 산업도시 영도 대평동의 민속문화를 역사, 생업, 의식주, 세시풍속과 민속신앙, 민속사회, 도시재생 등으로 나누어 살펴본 현장조사 보고서다. 영도구 대평동은 ‘일본’, ‘수리조선업’, ‘어업’ 세 가지 기반 위에 6․25 전쟁과 산업화 이후 부산으로 유입된 다양한 출신지의 이주민으로 구성된 곳이다. 영도 보고서는 이러한 영도의 특성을 고려, 대평동의 민속을 역사성과 지역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


‘영계동(瀛溪洞)’, 최초로 밝힌 대평동 옛 지명 중 하나

대평동을 가리키는 지명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풍포(待風浦)’란 ‘방파(防波) 시설이 불비(不備)한 때 주로 어선과 그 밖의 선박들이 풍랑을 피하기에 알맞은 포구’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말로, 영도에만 있는 고유 지명은 아니었다. ‘대풍포’가 땅의 기능을 의미하는 말이라면, ‘주갑(洲岬)’은 땅의 모양을 의미하는 말이다. 주(洲)는 강이나 호수 가운데 흙이나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섬을 말하고, 갑(岬)은 물쪽으로 뾰족하게 돌출한 육지로 곶(串)과 같은 의미다. 매축이 이루어지기 전의 대평동은 육지로부터 가늘고 길게 이어진 모양이었다. 


 ‘각사등록 경상도편(各司謄錄 慶尙道篇)’융희 4년(1910) 기사를 보면, 대평동 지역을 가리키는 행정구역 명칭으로 동래부 사중면(沙中面) ‘영계동(瀛溪洞)’이 나온다. 당시의 가구 수와 인구를 보면, 영계동은 영선동보다는 적지만 청학동과 동삼동보다는 많았다. 192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지형도-부산 남부’에는 ‘주갑(洲岬)’과 ‘영계동(瀛溪洞)’을 병기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대평동 지역은 일제강점기에 줄곧 ‘주갑’으로 불렸지만, 행정구역으로서는 영선동(瀛仙洞)에 대응되는 명칭 부여의 시도가 있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향후 영계동의 지역 범위를 비롯한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제사상에 ‘빨간 김치’를 올리는 곳

흔히 제사음식에 쓰면 안 된다고 여기는 것으로 고추와 복숭아가 있다. 고춧가루의 붉은 색이나 복숭아나무 가지가 귀신을 ㅤㅉㅗㅈ는 벽사 기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마늘이나 후추 같은 향신료도 사용하지 않으며, 또 ‘하찮다’는 의미가 포함된 ‘치’자가 들어가는 생선도 올리지 않는다.
그런데 대평동에서는 실제 붉은 고춧가루를 넣은 김치를 제사에 사용하고 있다. 붉은 김치는 또 반드시 마늘 양념이 들어가기 때문에 마늘과 고추를 다 사용하는 셈이다. 대평동에서 붉은 김치를 제사에 올리는 주민의 출신지는 대부분 경남 고성, 통영, 거제 지역으로 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김치를 담은 그릇에 조그만 간장 종지를 올려서 제사상에 놓는다. 주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빨간 김치의 사용, 게다가 모든 지역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민속의 지역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 각처에서 온 다양한 출신지의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독특한 고향의 생활풍속을 유지하는 것은 도시민속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영도에 들어오고, 만들어 간 다양한 사람들
‘영도에 오다: 이주와 정착’, ‘영도에 살다: 삶과 생활’(이현아, 황동이)은 영도 사람과 영도를 구술생애사 관점에서 살펴본다. ‘영도에 오다: 이주와 정착’은 18명의 제보자를 통해 이주민들이 영도로 이주하고 정착하는 과정과 아울러 그들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고찰한다. 또 이를 토대로 영도의 시대성과 사회상을 파악하고 있다.
‘영도에 살다: 삶과 생활’는 영도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6가지 주제를 선정해 영도의 모습을 담았다. 영도의 관문이자 부산사람들의 애환과 희망이 담긴 영도다리, 100년 역사의 봉래시장과 영도에서 가장 큰 남항시장, 영도 사람들의 발이 돼주었던 도선·통선·전차, 영도의 제조업과 조선업을 대표하는 두 기업인 대한도기회사와 대한조선공사, 관광 명소로 잘 알려진 태종대가 그것이다.


영도민속문화보고서02

뭍으로 올라오는 해녀.



영도다리에는 자살방지특공대가 있었다
1934년에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의 도개식(跳開式) 다리인 영도다리는 부산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다. 6․25전쟁 때는 전국 각지에서 온 피란민들이 전쟁통에 흩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영도다리로 모였고, 산업화시대에는 농촌을 떠난 이주민들이 영도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영도다리를 건넜다.
영도다리는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 만나는 약속의 장소였다. 하지만, 생활고와 가족을 잃은 비참한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삶과 이별하려는 사람들이 가는 곳도 영도다리였다. 1960년대, 영도다리에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영도경찰서 소속 자살방지초소가 세워졌고, 초소지킴이인 경찰(일명 ‘자살방지특공대’)들은 다리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리기 전에 미리 막거나 물에 경비정을 띄워 목숨을 구했다. 뛰어난 수영 실력과 인명구조 능력을 인정받아 경찰에 특채된 김말봉(남, 1939년생)은 1966년부터 4년동안 이 초소에서 근무했다. “밤늦게 영도다리 난간에 왔다 갔다 해요. 한 몇 개월 근무해보면 이기 다운할(뛰어내릴) 건지 아닌지 눈치 보이거든. 그럼 불러가 경찰서에 가서 설득시키가 이야기 물어보면 이게 다운하러 왔다는 얘기 나오는 거죠.”


한국 최초 고무잠수복 만든 곳 영도

영도대교 입구에 있었던 보온상사는 한국 최초로 고무 잠수복을 제작한 곳이다. 보온상사는 1960년대 말부터 고무 잠수복을 제작했는데, 이곳에서 일을 배운 사람들이 부산 외의 다른 지역에서 공장을 차려 잠수복을 제작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고무 잠수복이 국내에 알려지기 이전에는 방한(防寒)이 되지 않고 몸을 가리는 역할만 했던 광목으로 만든 잠수복(상의는 ‘물적삼’, 하의는 ‘물소중이’)을 입었다.  지금은 없어진 보온상사의 흔적과 고무 잠수복 역사를 찾아 영도와 남포동 등의 잠수복 제작사, 옛 보온상사에서 일했던 직원들의 인터뷰가 흥미를 끈다.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 1위 고등어

고등어는 최근 3년 연달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생선 1위에 꼽혔다. 부산공동어시장은 고등어 선단이 출항․귀항하고, 어획한 고등어가 경매를 통해 전국 각지로 흩어지는 집산지다. 국내 어획량의 80~90%가 부산공동어시장을 통해서 유통될 정도다.
1970, 80년대 옛 미화당백화점 옆에는 고등어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고갈비골목’이 생겨 성업했을 정도로 부산사람들의 고등어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부산시는 2011년 고등어를 시어(市魚)로 지정했다.



                                                                                                                               김영주_funhermes@korea.kr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20-09-2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010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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