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제202003호 문화관광

공장이 떠난 자리, 잿빛 공단을 꽃피우는 예술의 힘

전시·공연·레지던스·체험까지 … 예술가·주민 교류 만남의 장 역할

내용

부산의 전시 · 문화공간 ③ - 예술지구_p



도시의 생로병사 속 변화 맞아

 도시도 생로병사를 겪는다. 탄생하고, 자라고, 늙고 병든다.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사람들이 살면서 이야기가 생기고, 이야기가 쌓이면 역사가 되고, 역사는 곧 도시가 된다. 도시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가령 이야기가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 문화예술 공간이 있다면 도시의 가치는 높아진다. 아무리 도시가 늙어도 사람들은 그곳을 지키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부산은 한때 신발, 섬유, 의복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 공장이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의 산업을 주도했다. 1970∼80년대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중소기업의 부흥과 함께 부산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제2수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도시는 확장됐다.


14-1

금사공단에 위치한 문화예술공간 '예술지구_p'.



향토기업 욱성화학 지원으로 탄생
`폐공장의 예술공간화' 부산 첫 사례

사람 떠난 공단에 활력 불어넣어 


 금사공단(부산시 금정구 금사회동동)은 부산 산업의 부흥에 기여했다. 부산의 식수를 책임지는 회동수원지가 있고, 조선시대 동래부의 진산(鎭山)이었던 윤산(옛 구월산)이 있는 고요한 산마을은 공단이 들어오면서 활력이 생겼다. 주거시설이 늘어나고, 음식점과 상점이 들어오고, 병원과 주유소가 생겨났다. 금사동에 사람과 돈이 흘렀고, 거리에는 윤기가 돌았다.
 번영을 구가하던 금사공단은 1980년대 말부터 서서히 쇠퇴했다. 우리나라 산업이 노동집약산업에서 고도산업으로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금사공단도 변화를 맞았다. 사람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금사동을 떠났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공단은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다. 도시도 쇠락해갔다. 사회적인 문제-인구 공동화와 도시 슬럼화-도 따라왔다. 이를 개선하고자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제기됐고, 몇몇 계획은 추진 중이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공단 활성화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거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이다. 안타깝지만 금사공단의 현실이다.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금사공단의 산업 맥박은 여전히 뛰고 있다. 거센 변화의 바람에도 꿋꿋이 금사공단을 지키는 부산을 대표하는 기업인 ㈜욱성화학과 동일고무벨트 등 중견기업들의 힘이다.


14-2

'예술지구_p' 전시장.



공장지대에 생긴 예술 공간

 공단하면 떠오르는 것은 치열함이다.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소리, 지게차 소리에 맞춰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서 긴박감이 돈다. 느슨함이나 허술함은 허용되지 않는다. 자연스레 긴장과 압박이 따른다.
 이처럼 숨 막히듯 맞물려 돌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서정적인 어떤 풍경을 떠올리는 것은 사치일까? 잠시 기계를 멈추고, 긴박했던 삶의 호흡을 늦추기 위해 예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예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2013년 12월 금사공단에 `예술지구_p'(Art district_P) 가 처음 생겼을 때 사람들은 생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공장과 예술은 접점을 이루기가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음악 공연이 펼쳐지고, 그림과 사진 전시가 이루어지며, 예술가들이 숙식을 해결하며 작업에만 매진할 수 있는 레지던스가 있는 `예술지구_p'가 공단에 생긴 것은 누가 보아도 의아했다. 낯설었던 변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쇠락해가는 금사공단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고, 공장지대의 색깔을 바꾸었다. 공장 노동자들의 고단한 일터로만 여겨지던 공단에 예술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공연자들, 화가, 사진가들이 찾아들었고, 그들의 예술을 향유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4-3

'예술지구_p' 카페(왼쪽)와 콘서트홀.


후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

 `예술지구_p'는 폐공장을 개조해 만들었다. 부산에서는 첫 시도였다. 그 후 고려제강 와이어로프 생산 공장에서 복합문화공간이 된 `F1963'이 생겼다.
 `예술지구_p'의 탄생 배경에는 (주)욱성화학이 있다. 1969년 설립된 (주)욱성화학은 물감, 페인트 등 색이 있는 제품들의 컬러 원료를 만드는 세계적인 안료 제조업체다. 1976년 5월 금사공단으로 이전해 지금까지 공단을 지키고 있다. (주)욱성화학은 새 공장을 지으면서 기존의 공장이 유휴 공간이 되자, 뜻밖의 계획을 세운다. 바로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공간으로 사용하자는 것. 보다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라면, 빈 공장은 임대해 임대 수익을 올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주)욱성화학은 그 당연한 일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지역을 기반으로 번 돈을 지역에 되돌려주자고 생각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폐공장을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고, 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내주었다. 모든 기반시설을 갖추어 주는 것은 물론이고, 시설의 운영과 유지에 드는 비용은 (주)욱성화학에서 부담했다.

 부산에서 활동을 하는 세 단체가 운영을 맡았다. 미술가 레지던스 및 기획 전시를 맡아하는 `창작공간 p', 사진가 레지던스 및 기획 전시와 사진 미디어 공간을 운영하는 `포톤', 공연기획 및 전방위 예술극장인 `금사락'이다. 여기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부산경남지부도 있다.



공단·주민 예술 향유할 수 있는 곳

공동대표(이동문·이호섭)인 이동문 사진가의 안내를 따라 `예술지구_p'를 돌아본다. 건물 두 동이 마주 보고 있는데, 정면 입구에서 보면 오른쪽 건물은 원래 있던 공장 건물이다. 이곳에는 갤러리와 레지던스 창작공간, 사진 미디어 공간이 있다. 왼쪽 건물은 새로 지었다. 300석 규모의 대형 콘서트홀이 있고, 스튜디오, 레코딩룸, 음악 레슨실, 카페, 식당, 사무실이 있다.
 좀체 전시할 기회를 얻기 힘든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전시를 기획하는 `창작공간 p'는 기존 갤러리에서는 공간적 제한으로 하기 힘든 대형 작품 전시도 거뜬히 해낸다. `금사락'은 수준급 음향시설과 악기 세트를 갖추고 있어 지역 음악인들이 저렴하게 음반 녹음도 할 수 있다. 각종 공연과 강좌, 영화 상영을 하기도 한다. `포톤'은 사진과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스튜디오와 고품질 사진 출력과 대형 필름 스캔을 할 수 있는 필름 스캐너를 보유하고 있어 실비로 활용할 수 있다.
 레지던스는 작가들이 1년 동안 무료로 먹고 자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고 있다. 매년 경쟁을 통해 입주자를 선별한다. 최대 11명까지 입주할 수 있다. 그동안 외국인들도 여럿 입주했다. 작가들은 이곳에서 마음껏 창작하고, 전시와 공연도 할 수 있다.


14-

    '예술지구_p' 공동대표 이동문 사진가.


 "예술이 특정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문턱을 더 낮추고 싶습니다. 공단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들러 전시를 보고, 퇴근 시간에 공연을 감상하고, 공단 인근 주민들도 수시로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일반인들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공동대표 이동문 사진가의 말대로, 예술가에 대한 지원은 곧 공단 직원과 주민 등 일반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지고 있다. 공단 직원을 위한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주민들을 위해 무료 공연도 한다. 70세 이상 이웃 노인들에게 미소 사진(영정사진)을 촬영해 주고, 공단의 아이들을 위해 체험 미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예술지구_p'가 자리를 잡은 금사공단을 돌아보며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카페에서 마술을 하는 여인의 모습이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그 여인은 막대기에서 꽃을 피우는 마술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삶을 구원하는 건 연대와 상상력, 즉 예술이다. `예술지구_p'와 영화는 폐허에서 꽃을 피우는 예술의 기적과 생명력을 말해준다.
 용도 폐기된 공장이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해 쇠락해가는 공단에 마술처럼 꽃을 피우는, `예술지구_p'의 파장이 물결처럼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글 김진·사진 권성훈


 김진

동화작가. 글과 책에 매혹되어 기자,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했다.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우리 동네 마루'로 등단, 제3회 열린아동문학상을 받았다. 펴낸 책으로 `럭키 파트라슈', `노래하는 여전사 윤희순', `외뿔 고래의 슬픈 노래' 외 여러 권이 있다. 현재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부산에서 삶의 터전을 새롭게 일구고 있다. 부산의 매력에 빠져 언젠가 부산과 부산 사람을 소재로 한 글을 쓸 생각이다.




                                                                                                                                                         기획 · 진행 · 편집  김영주_funhermes@korea.kr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20-03-0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003호

첨부파일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