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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1902호 칼럼

왜 우리는 유관순만 기억하는가? 일신여학생들 함성 기념하자!

3·1운동 100주년;일신여학교 만세운동

내용

미국 뉴욕주 상·하원 '유관순의 날' 지정
일신여학교 만세시위 부산 3·1운동 기폭제
'3월 11일'을 기념일로

오미일

오미일 (부산대 HK교수)

 

뉴욕타임스 2018년 3월 28일자 '우리가 간과한 사람들(Overlooked No More)'이란 연재에 '유관순, 일제 통치에 저항한 한국독립운동가'(Yu Gwan-Sun, a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Who Defied Japanese Rule)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뉴욕타임스가 1851년 이래 백인 남성에 대한 기사가 지배적이었다는 반성으로 주목할 만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올해 1월, 뉴욕주 상·하원은 3월 1일을 '유관순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뉴욕주 롱아일랜드 나소카운티는 '유관순상'을 제정했다. 뉴욕주에 이어 콜로라도주 오로라시도 3월 1일을 '유관순 열사의 날'로 기념하기로 했다.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1920년 2월 17일자 기사 '부인과 독립운동'에는 "3월 1일 왼손에 태극기, 오른손에 독립선언서를 들고 시위행렬의 앞에 서서 돌진하던 한 처녀는 적의 칼에 양손을 끊기었다. 이것이 독립운동의 첫 피다. 대한독립을 위한 첫 피는 대한 여자에게서 흘렀다. 그로부터 대한의 여자는 독립운동의 모든 부문에 빠짐이 없었다. 비밀문서의 인쇄, 등사, 배포와 통신의 대부분은 여자의 손으로 되었다"고 보도했다. 3·1운동에서 여성들이 시위행렬의 선두에 섰고, 격문이나 비밀문서의 인쇄와 배포가 대부분 여성에 의해 이뤄졌음을 증언한 것이다. 

 

3·1 독립만세운동에서 조직적 운동주체로서 여성의 활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부산진(좌천동) 일신여학교 학생 시위이다. 3·11만세시위로 체포된 이는 약 30명이었는데, 그중 교사 2명(징역 1년 6개월), 여학생 10명(5개월), 일반 주민 1명(징역 8월)이 징역형을 받았다. 15∼18세의 여학생들은 부산형무소에서 모시실을 무릎에 비벼 뽑는 노역으로 무릎이 벗겨져 피가 나는 혹독한 수형생활을 감당해야 했다. 한 달간의 휴교 후 등교한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다시 인근 주민들과 함께 4월 8일 2차 시위를 전개했다. 경찰에 탐지되어 비록 거사하지는 못했지만, 4월 9일과 10일에도 동래고보, 부산 제2상업학교(오늘날의 부산개성고)와 시위를 계획했다. 따라서 그동안 일신여학교 만세운동에 대해 '부산경남지역에서 최초'라는 점만 강조해 왔으나, 2차 시위 실행에 이어 3·4차 시위를 계속 시도했다는 점에서 '운동의 지속성'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 우리는 유관순만 기억하는가? 일신여학교 학생들을 기억하고, 3월 11일 만세시위를 지역기념일로 기리자.

작성자
하나은
작성일자
2019-02-27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1902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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