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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1902호 칼럼

부산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내용

 

김남희

△김남희
여행가. 15년째 여행에 대한 글쓰기로 살아가고 있다.

그 사이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아보기’ ‘길 위에서 읽는 시’ 등을 썼다.

 

나에게 부산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종종 그리워지는 도시다. 서울에 사는 이들 중에 한때라도 부산을 향한 낭만 어린 감정을 품지 않은 이가 있을까. 젊은 날의 나에게 부산은 탈출구였다. 기차를 타고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 따뜻한 항구 도시. 밤 기차를 타고 남쪽 바닷가까지 내려가 낯선 억양을 구사하는 타인들 사이에 숨어들고 싶은 곳이었다.


부산과 나의 첫 만남은 대학에 들어간 1989년의 여름이었다. 동기들 몇이 달맞이고개에 사는 선배의 집을 찾아(갔다고 쓰고, 쳐들어갔다고 읽는다)간 날, 선배의 어머니는 그야말로 버선발로 뛰어나와 우리를 맞았다.
철호 친구들이재. 아이고야, 우째 여까지 왔노. 아들 친구들이 식객으로 몰려왔는데 뛰어나와 반겨주시다니. 사흘 굶은 거지처럼 매끼를 먹어치우면서 염치도 모르는 청춘들에게 곧 질리시겠지. 얄팍한 셈이 부끄럽게 어머니는 떠나는 날까지 어린아이 돌보듯 우리를 먹이고 재우셨다. 그날 이후 ‘부산의 철호형 집’은 우리 과의 성지순례 코스가 되어버렸다. 방학마다 무전취식을 하러 가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칭송은 한결같았다.
그런 정서는 삼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걸까. 2년 전 여름,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부탄에 간 일이 있다. 일행 중에 부산과 경남지역 여자들 몇 명이 있었다. 흥겨운 춤사위와 멋들어진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던 여자들이었다. 그해 가을, 강연을 하러 부산에 간다 했더니 그녀들은 펜션의 방을 잡아놓고 나를 기다렸다. 상에는 싱싱한 횟감부터 온갖 먹거리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그 밤, 우리는 새벽까지 깨어 웃고 울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다. 삶의 신산한 파도에 몸이 젖어도 어쩔 수 없다고 후두둑 털며 일어서는 여자들. 강인하고 사랑스러운 이들이었다. 

 

언젠가 네팔에서 만난 중국인 여행자가 부산의 감천마을을 다녀왔다면서 ‘부산의 산토리니’라고 했다. 산토리니는 섬 전체가 비슷한 풍경을 지녔다. 절벽의 하얀 집들, 교회의 푸른 지붕, 붉은 부겐빌레아, 에게해의 물빛. 산토리니에서 소비되는 것은 그 단일한 풍경뿐이다. 게다가 산토리니는 오버투어리즘의 피해를 심각하게 앓으며 현지인들이 점점 떠나는 섬이 되었다. 반면에 부산은 한 가지 풍경으로 정형화되기를 거부한다.
피란민들이 일구어낸 감천마을이 있는가 하면, 센텀시티의 모던함과 아찔한 스카이라인의 빌딩들이 다가오고, 초량의 가파른 언덕과 좁은 골목의 옛집들을 보았나 싶으면, 소박한 영도의 고즈넉한 바닷가와 화려한 해운대의 떠들썩한 해변이 기다린다. 무엇보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강렬한 정서를 지니고 있다. ‘꼴데’라 부르면서도 롯데에 대한 애증을 놓지 못해 야구의 승패에 하루의 기분이 오가는 사람들.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되던 지역 정서가 부담스럽다 여겼더니 강고한 지역주의를 무너뜨려 버린 사람들. 그런 의리와 화끈함과 대도시의 풍경과 바닷가 마을의 정서를 동시에 품고 있는 도시는 어디에도 흔치 않다. 

 

하지만 한 단어로 부산을 정의해야 한다면 내게 부산은 해운대도, 영화제도, 자갈치시장도 아니다. 오직 ‘부산 사람들’이다. 부산 사람은 일생에 한 번도 못 만나는 일은 있어도 한 번 밖에 안 만나는 일은 없는, 그런 사람들이다. 특히나 부산 아지매들. 그녀들에게는 특유의 다정함이 있다. 이 다정함은 조심스럽고 섬세한 다정함이 아니다. 애정을 받는 입장에서는 살짝 당혹스러울 만큼 확 밀고 들어오는 다정함이다. 상대의 반응을 살피지 않고 어떤 계산도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쏟아져 들어온다. 나 같은 서울깍쟁이는 놀라 주춤거리게 될 정도다. 그 뜨거움에 한 번 영혼을 데이고 나면, 수가 없다. 삶이 삐끗거릴 때마다 부산을 찾을 수밖에. 영악하게 살다 지친 동생이 찾아오면 묵묵히 잠자리를 내어주는 언니 같은 도시. 남쪽 바닷가에 부산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작성자
조민제
작성일자
2019-02-2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1902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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