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o Steyerl(1966~)은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이자 저술가로, 현대 자본주의의 작동 논리 안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 미디어, 이미지 사이의 정치적 역학 관계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이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 매체를 가로지르며 감각적이면서도 냉소적으로 시각화하거나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에세이로 풀어내기도 한다.

붉은 핏빛 공간 위에 설치된 3채널 영상 작품 <타워>는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부에서 시도한 현대판 바벨탑 재건 사업에서 시작한다. 이 실패한 프로젝트는 러시아 인접 지역 우크라이나(Ukraine), 하르키우(Kharkiv)에 위치한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Ace3D가 제작한 1인칭 슈팅게임(FPS, First-person shooter)<스카이스크래퍼: 혼돈의 계단>(Skyscraper: Stairway to chaos)에서 다시 이어진다. 이 영상은 자신을 이 게임 설계에 참여한 개발자라 소개하는 인물에 의해 전개된다. 그는 냉전 말기 소련 해체 과정에서 해고된 기술자들이 고용된 이 회사가 제공하는 사치스러운 서비스와 그 이면에 가려진 현대 사회의 정치적 사안들을 꼬집는다. 새 개의 모니터에는 이라크 사마라의 그레이트 모스크(Great Mosque of Samara), 히르키우에 설치되었던 임시 군용 텐트와 바리케이드, 컴퓨터 게임 개발, 초호화 호텔 및 사무 공간 건축, 군사 및 응급 상황 시뮬레이션 등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와 폐쇄된 전망대에서 촬영된 이미지들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디지털 이미지로 구현된 세계 위에 보이스오버 되는 내용은 값싼 노동력과 착취라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이면, 부동산, 면세 구역, 영토분쟁, 군사 충돌 등 러시아 국경선에서 불과 1km 떨어져 실제 존재하는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토피아적 이상 너머에 굳건히 자리한 디스토피아적 현실들이다. 이 불안한 현실 상황을 게임 상의 잠재적 현실 세계로 다루는 이 작품 속에서 타워는 고도의 디지털 기술과 가상 프로세스에 의해 현실이 어떻게 증강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미지가 되어 호화롭게 증강된 이 세계를 향해 다시 총구를 겨누는 역전된 플레이가 시작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