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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대풍포매립공사

영도 대풍포매립공사

대풍포(大風浦)는 원래 대풍(待風)이란 말과 같이 방파제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어선이나 그 밖의 선박들이 세찬 바람과 풍랑을 피하는데 알맞은 곳이다. 부산항이 1876년 개항되면서 일본 선박왕래는 그 수가 증가함에 따라 지금의 중앙동 부산데파트 부근에 있었던 초량왜관의 선창으로는 자리가 비좁았다. 대풍포매립공사(大風浦埋立工事)가 본격화 된 것은 일본의 소형선 특히 어선들이 왜관 맞은편인 지금의 영도구 대풍포에 정박해서 그 해변에서 급수, 피난, 어선의 건조, 수리를 하려는 생각을 가지면서 부터다.

그 즈음에 구한국정부의 고관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돌아와 부산에 머물고 있었다. 부산주재 일본영사가 대풍포일대 사용을 구한국정부 고관에게 간청했다. 그러자 그 고관은 토지의 소유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구두로 사용을 허가하였다. 이에 한국인 소유주는 그곳이 자기 소유라 밝혀도 정부 고관이 한 일이라고 동래부에서는 발뺌을 했다 한다. 토지 소유자는 동래부에서 대풍포일대의 토지소유 증명서를 발급받아 한양으로 올라가 정부당국에 소원하였으나 정부에서는 모두가 모른다는 핑계로 일관 했다. 결국 대풍포 일대의 개인소유 토지는 일본인 전관거류지에 빼앗기고 말았다. 그 뒤 일본인 志村이란 사람이 대풍포를 매립하려고 일본 거류민단의 승낙을 얻어 매립권을 최초로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志村이란 사람이 매립을 못하고 있는 사이 일본인 大澤이라는 사람이 일본인 거류민단에서 매립권을 양도받았다. 대풍포 매립공사는 1916년 착공하여 40,200여평을 매립하여 1926년 6월 준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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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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