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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해관부지매축

부산해관부지매축

부산해관(釜山海關)은 1883년 6월「在朝鮮國日本人民通商章程」의 체결로 1883년 10월 3일 인천·원산과 더불어 그 개설을 보게 되었다. 이 당시 부산항만 설비시설로는 일본전관거류지 동쪽 용미산(옛 부산광역시청, 현 롯데월드 자리) 아래 간단한 제방에 둘러쌓은 약 7,000평의 선류장 뿐이었다. 부산해관부지매축(釜山海關敷地埋築)은 부산 해관장은 1887년까지 청이 추천하는 영·독·불·이의 외국인이 역임하였고, 리홍장(李鴻章)이 추천한 何文德(Robert Hart)이 해관장으로 부임해오게 되면서 본격화되었다.

구한국정부는 부산해관의 설비·규모에 주목하여 오던 중 해관장(하문덕)은 해관부지 매립 허가를 구 한국정부에 매축허가와 공사비 1,000냥을 받아 청나라 기술자를 초빙하여 설계를 하고 우리나라 일꾼들로써 공사를 착공하여 1888년 4월 완공을 보았다. 매축된 자리에는 1889년 10월 공사비 2,546냥을 구한국정부로부터 교부받아 해관잔교(海關棧橋)와 보세창고를 세웠다.

1902년(광무 6)에 이르러 부산매축주식회사(일본인회사)가 설립되어 기존의 선류장에서 부산본역(구 부산역)의 부지에 이르는 일대를 매축하게 되어 1908년(융희 2) 8월 총면적 136,537.5㎡의 매축을 완료하였다. 이로써 종래 부산항의 배면에만 발전한 시가도 항만을 따라 차츰 북쪽으로 발전의 열기가 이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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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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