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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전투

동래읍성 전투

동래읍성(東萊邑城)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칠산동·복천동에 걸쳐 있는 성으로, 동장대(東將臺)가 있는 충렬사(忠烈祠)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서장대(西將臺)가 있는 동래향교(東萊鄕校) 뒷산의 구릉지까지 이어져 있다. 읍성은 지금의 동래시가지 중심지역인 평탄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역에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 형식으로 축조된 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읍성(邑城)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사이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동래읍성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東萊府使) 송상현공(宋象賢公)을 위시한 모든 군·관·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임란 초기의 최대 격전지이다. 임란 이후 방치되어 있던 읍성을 1731년(영조 7)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은 나라의 관문인 동래지역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과거의 성보다 훨씬 규모가 큰 읍성(邑城)을 쌓았는데, 이때 쌓은 성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읍성의 기원이다

동래읍성 전투(東萊邑城 戰鬪)는 1592년 4월 14일 오전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왜군이 동래와 다대포로 진출하면서 시작되었다. 동래는 부산진과 가까운 거리였고, 또 부산지역의 행정 관할은 동래부에 있었다. 당시 동래부사는 문관 출신의 송상현이었다. 송상현 부사는 수성 계획은 일차적으로 지역의 병권(兵權)을 가지고 있던 경상좌도의 군사와 인근 군·현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싸울 예정이었다. 당시 경상좌도 병사의 군사 책임관 이었던 경상좌도 병사는 이각(李珏)이었다.

이각은 울산에서 동래성을 지원하려 왔다가 일본군의 군세가 막강함을 보고서는 뒤에서 계속 지원하겠다고 하고서는 성문을 열고 도망하였다. 그리고 직접 부사의 명령계통은 아니었지만, 부산지역 해안 방어를 책임지고 있던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의 수사는 박홍(朴泓)이었다. 그는 부산포에 적이 들이닥치자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러나 양산군수(梁山郡守) 조영규(趙英 圭)는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달려가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로 싸우기로 하고 끝까지 항전하다가 송상현 부사와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일본군은 이미 부산진성 전투 에서 조선민(朝鮮民)의 굳센 항전을 경험 하였기 때문에 대군을 동원하여 일시에 동래성을 포위·공략했으므로 격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동래성 전투는 15일의 경우 시간적으로 보면 부산진성 전투보다 전투 시간이 짧았다. 대격전은 우리측에 많은 희생자를 냈으며 마침내 동래성은 함락되었다. 당시 송상현이 남긴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이라는 글귀는 보는 이로 하여금 국난극복의 중요성과 충직한 삶의 자세를 일깨워 준다. 또한 동래읍성 전투에서 최후까지 군민과 함께 성을 지키다 장렬하게 전사하신 송상현 부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1978년 3월 1일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모너머고개 정상에 동상을 세웠다. 이곳을 송공삼거리라 부른다. 동래읍성은 현재 옛 성벽의 일부만 남아 있었으며, 시가지역은 도로, 주택 등으로 변하여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한 도시정비계획에 따라 성벽과 각종 문루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 일부인 망미루, 동래독진대아문 등은 금강공원 입구나 공원에 옮겨져 있다.

그러나 동래읍성의 성역은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성벽이 지나던 곳에는 도로를 내고, 주택을 지어 성벽의 기초는 땅속 깊숙이 묻혀버리게 되었다. 2005년 부산지하철 3호선 2단계 공사를 하던 중 수안동사거리 지하구간에서 동래읍성 기초 초석이 발견되어 문화재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군관민이 일치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항전하였던 동래읍성의 모습은 그림으로서만 볼 수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동래읍성의 복원하자는 여론이 없는 것은 아니나 복원에 따른 막대한 예산뿐만 아니라 사유재산권 침해,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라는 더 큰 어려움이 따른다.

관련 유적으로는 동래부 동헌(시 유형문화재 제1호), 장관청(시 유형문화재 제8호), 군관청(유형문화재 제21호), 임진동래의총(시 기념물 제13호), 망미루(시 유형문화재 제4호), 동래독진대아문(시 유형문화재 제5호), 송공단(시 기념물 제11호), 충렬사(시 유형문화재 제7호), 동래읍성지(시 기념물 제5호), 동래부순절도(보물 제392호, 육군사관학교 소장)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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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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