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부산진매축기념비

부산진매축기념비

부산진매축기념비(釜山鎭埋築紀念碑)는 부산시 동구 수정2동 1-4번지 동부경찰서 정문 옆 화단에 위치하고 있다. 이 비는 부산진매축 공사인 제1, 2, 3기를 모두 마무리하고 이를 기념하여 1939년 4월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대륙침략의 발판으로서 부산을 군사·경제의 전진기지로 활용하는 데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부산항의 매립은 구 부산역(현재 본부세관 맞은 편)을 중심으로 한 '새마당' 매립을 비롯하여 북항과 남항의 매립을 완성하여 오늘날 부산항 건설의 기초가 되었다. 오늘날의 중앙동과 남포동 거리가 모두 바다였었다는 것을 아는 젊은이는 드물 것이다.

옛 부산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천연의 좋은 항구를 이루고 있었으나, 평지가 적어 항만발전에 크게 저해되고 있었는데 바다의 매립으로 시가지를 형성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무분별한 매립으로 인해 부산항이 기형적으로 발전하는 형태를 낳은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다.

부산진매축기념비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앞면에는 '釜山鎭埋築紀念碑'라 새겨져 있다. 이 비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는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부산항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명암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기념비의 뒷면에 새겨져 있는 비문은 시멘트를 덧칠하는 등 훼손으로 판독이 어려웠으나, 최근에 와서는 덧칠했던 시멘트가 떨어져 나가면서 어느 정도 판독이 가능하게 되었다. 비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비문의 내용 :
		부산진은 대륙의 관문으로 항만의 매축 주요도로가 매우 급하여 대정 원년(1912년) 9월 □일 조선기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익년 3월13일 처음으로 공사를 착수하였으며 예정된 계획을 공정대로 모두 완료하여 총40여만평을 준공시켰다.
		매축지는 철도 국도 경비창고 및 각종 회사 등의 중요한 지역이 되었고 군사공무 산업문화를 위해 공헌하였다. 국가봉사의 영리를 떠나 수많은 어려움에도
		관계자 일동은 마음을 다하여 현저한 공적을 거두었으며 회사를 해산시킨 것은 소화 12년 (1937년) 4월 23일이었다. 
		이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돌에 새겨서 영원히 전해 남긴다.

부산진매축은 부산항의 북부인 구관(舊館)에서 부산진에 이르는 1,320,000㎡(실제 측량 때에는 150만평이었음)을 40만원으로 매입하여 조선총독부로부터 매축하가를 받아 시행하였다. 제1기 매축공사는 1913년 6월 착공하여 1917년 12월 준공을 보았다. 이 때 매축으로 생겨난 땅이 475,820.4㎡이었고, 이 때의 호안공사로 그동안의 개펄이 사라진 대신 바다와 육지의 구분이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2, 3기의 매축공사는 회사의 형편으로 중단되었다가 부산진매축주식회사가 조선기업주식회사로부터 인수하여 2, 3기에 해당하는 범일동과 우암동 앞바다를 포함한 1,008,777㎡(혹은 1,036,992㎡ , 소요 예정경비 478만원)의 매립허가를 받아 1926년 11월 매축공사를 착공하여 절반에 해당하는 534,765㎡ 은 1932년 12월(준공일이 정확하지 않음)에 준공하였다.

3기는 나머지 498,927㎡의 매축으로 1938년 8월 준공이었으나, 1939년 초에 준공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준공일자는 알 수 없으나, 부산진매축공사 준공을 기념한 매축기념비가 1939년 4월에 세워졌다. 그러나 공사 진행에 관한 제반사항 관련 자료를 찾지 못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어 대단히 유감스러울 뿐이다. 앞으로 관련 자료를 찾아 보완하고자 한다. 또 하나의 '부산진매축지기념비'는 부산시 동구 수정동 고관입구 삼각지공원내에 1983년 2월에 화강석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자료관리 담당자

문화예술과
시사편찬실 (051-888-5058)
최근 업데이트
2017-09-15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