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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사직단

사직단(社稷壇)은 약 3천여년전 중국에서 천자(天子)와 제후(諸侯)가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사(社, 토지신)와 직(稷, 곡신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만든 제단에서 유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농신(農神)에게 제사지내는 풍습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고, 사직단은 783년(신라 선덕왕 4년)에 처음으로 세워진 후, 1395년(조선 태조 4년)에 이르면 전국 주요지역에 사직단을 세우고 중앙의 종묘(宗廟)와 함께 중요시하였다. 당시 동래 사직단은 정당(正堂) 1칸, 재실(齋室) 5칸으로 1640년 동래부사 정호서(丁好恕)가 처음 세웠다. 1672년 동래부사 이하(李夏)가 중창하고, 1709년 동래부사 권이진(權以鎭))이 동래부 서쪽 5리에 옮겼다.

사직단터는 바로 1709년에 옮긴 사직단이 있었던 곳이다. 이 사직단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우리민족 말살정책으로 원형이 파괴되고, 사직단터만 남아 있다가 1950년대 중반 도시화 과정에서 그 흔적마저 없어졌다.

『동래부지(1740)』사묘조(祠廟條)에는 "정당(正堂) 1간, 재실(齋室) 5간으로 경진년(庚辰年, 1640, 인조 18)에 부사 정호서(丁好恕)가 세웠다. 임자년(1672, 현종 13)에 부사 이하(李夏)가 중창하고, 기축년(1709, 숙종 35)에 동래부사 권이진(權以鎭)이 부(府)의 서쪽 5리에 이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광복 이후 여고리·석사리를 합하여 지난날의 사직3동 산신당이 사당형식으로 남아있다. 부산광역시에서는 2002년 9월 역사유적지 표석설치 계획에 따라 동래구 사직3동 351-14번지 여고노인정 옆 화단에 「사직단터」의 표석을 세워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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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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