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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영도임시왜관

절영도임시왜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이후 1609년(광해군 원년)에 일본의 요구로「을유약조(乙酉約條)」를 체결하여 양국관계가 정상화 되었다. 또한 외교교섭이 논의되던 때인 1607년(선조 40)에 두모포왜관이 설치될 때까지 강화교섭을 위해 온 일본사신들은 절영도에 임시로 설치된 절영도가왜관(絶影島假倭館)에 숙박하였다.

『선조실록』에 있는 당시의 부산의 왜관 사정을 설명하는 내용과 경운(慶雲)의『해차록』의 1607년(선조 40) 2월 19일 기록 등을 종합하여 보면, 절영도에 설치된 임시왜관의 존속기간은 대체로 1603년(선조 36)으로부터 1607년(선조 40)에 걸친 전후 5년간으로 생각되며, 절영도 임시왜관의 위치로는 오늘날의 한진중공업 자리 또는 대평포매립지 일대로 추정하고 있으나, 학자마다 약간의 의견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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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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